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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언카르텔이 2년전 여름에 한 짓을 알고 있다 [기고] 한 가족을 집어삼킨 지난 2년간의 인간사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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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언카르텔이 2년전 여름에 한 짓을 알고 있다
[기고] 한 가족을 집어삼킨 지난 2년간의 인간사냥에 대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336


최근에 윤석열 X파일과 윤석열 부인의 과거에 대한 많은 주류언론과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반응에는 분명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근거가 부족한 의혹들을 섣불리 공개하거나 문제 삼기는 어렵다’, ‘충분한 검증 없이 아니면 말고로 보도하고 의혹을 확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생활을 캐고 보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별적 편견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옳지 않고 당사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물론 공적인 인물과 가족이 공적 권한과 권력을 사적 이익과 비리에 이용한 문제를 존중받아야할 사생활과 섞어버리는 문제가 있지만, 누구도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고 프라이버시는 존중돼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에서 봐야할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심각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인권은 있고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이런 태도와 기준이 왜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에게는 적용돼지 않았었냐는 것에 있다. 2019년에 절정에 달했고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지속되는 사건들 속에서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이 당한 인권유린, 사생활 침해, 혐오, 낙인, 편견, 조롱, 따돌림, 스토킹, 조리돌림, 집단적 괴롭힘은 실로 역사에 남을 수준과 규모였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 ‘조국몰이’는 특수통 검사 70명과 수사관까지 총인원 100여명이 투입돼 100여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조국, 부인, 동생, 딸, 아들, 모친, 친척들로까지 확대돼 나갔다. 심지어 사망한 부친과 동생의 이혼한 전처까지 불려나왔다. 조국 가족은 2년 넘게 수십번의 소환조사와 재판 출석을 하고 있고, 정경심 씨는 지금도 감옥에 갇혀있다.

2019년 그 절정기에 무려 100만건이 넘는, 하루에도 수만 건의 관련기사들이 쏟아졌다. 온라인에는 온갖 허위사실, 가짜뉴스, 인격살해적 조롱과 욕설이 차고 넘쳤다. 검찰은 조국 부부의 PC를 압수해서 거기 담긴 모든 정보를 털었고, 부인과 딸의 일기장도 압수해 갔고, 부부와 가족 간의 사적인 문자메시지와 대화 녹음까지도 모두 들춰보고 일부는 공개했다.


언론은 이들 가족의 옷차림과 안경 브랜드, 식사 메뉴, 생활패턴, 부친의 묘비문구, 동생의 이혼 사유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스토킹하듯이 취재하고 보도했다. 딸의 주거지에 새벽에 찾아왔고, 지인과 친구들을 다 뒤지며 뒤를 캐고 다녔다. 딸이 면접만 봐도 ‘단독’ 기사가 쏟아졌다. 국립의료원에 불합격하자 2시간만에 48개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할 정도였다.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개혁 언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파 정치인과 논객들만이 아니라 진중권, 김경율, 서민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조국 교수와 그 가족에게 혐오와 편견, 적의와 살기까지 느껴지는 낙인을 찍었다. “위선”, “사기”, “구역질” 등의 날선 언어들이 사용됐고, 위키트리는 조국 교수를 조두순에 비유했다. 서민은 조국 교수를 “기생충”, “말라리아와 동급”이라고 했고, 그의 딸을 ‘연쇄살인마’에 비유했다. 최근 ‘조선일보 삽화 사건’은 우연이나 실수보다 이 맥락과 흐름이 낳은 구조적 필연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 인권에 대한 고려나 사생활 존중이란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조국 교수의 부인(정경심)과 딸(조민)이 주된 타겟이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과 친구들도 대부분 ‘손절’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조민 씨는 최근에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학창시절의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고, 증언도 거부했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정경심 씨가 전화해서 조언을 구했던 동양대 관계자는 그 통화를 매번 몰래 녹음해 그대로 검찰에 넘겼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욕하고,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곧 지옥이다. 그런 정신적 고통은 신체화되기 마련이다. 조국 교수의 부인은 뇌종양·뇌경색에 대한 진단을 받았고, 동생은 치아가 8개나 빠졌고, 모친은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상상하기도 힘든 그 고통은 「조국의 시간」에도 나와 있다.

“나와 내 가족은 괴물로 낙인찍힌 후 발가벗겨진 채 조리돌림을 받고 멍석말이를 당했다… 매일매일 또 무슨 기사가 실리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걱정해야 했다. 기사 하나하나가 몸에 박히는 표창같았다.” “수십 개의 칼날이 몸속으로 계속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족의 살과 뼈가 베이고 끊기고 피가 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하는 끔찍한 절통(切痛)이었다.” “광장에서 목에 칼을 차고 무릎이 꿇린 채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검찰에게 나와 내 가족이 사냥감이었다면, 기자들에게는 동물원의 원숭이였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잘못을 했던 간에 이러한 인권유린과 인격살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다수는 여기에 침묵했고, 이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하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해서 인권을 말하던 많은 진보좌파 진영까지 이것을 방관하거나 침묵했고, 심지어 일부는 공격에 가담했다. 왜 그랬을까?

‘기대를 져버린 조국 교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다. 진보적인 의제들을 지지하던 조국 교수가 실제 삶에서는 출신과 특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라 했다. 그러나 조국 교수는 원래부터 불평등한 구조 속에 혜택을 받으면서도 평등을 지향하는 ‘강남좌파’의 대명사였다. 본인도 이미 2010년에 쓴 글에서 ‘노후를 위해 펀드에 투자하고 자식이 명문대 가기를 기대하는’ 모순을 인정하며 자신이 “겉은 빨갛지만 속은 하얀 사과”라고 고백했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국 가족이 계급불평등과 공정의 문제를 드러냈기에 분명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능한 설명이고 분명히 존재했던 요소이다. 그러나 ‘계급불평등과 공정’의 문제가 왜 나경원 자녀들의 특혜나, 동아일보 사장 딸의 입시채용 특혜나, 이준석의 부모찬스 등에서는 별로 의제가 되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계급불평등과 공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왜 몇몇 개인들에 대한 반인권적 공격들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결국 문제의 핵심은 마녀사냥과 그것이 낳은 효과였다. 사실 ‘조국은 말과 삶이 다른 이중적 인물이고, 자녀 교육에서 그것이 드러난다’는 지적은 이명박근혜 시절의 국정원의 비밀문건에서 이미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국정원은 “이중성 공박에 주력”해서 “비판 여론 조성”의 “심리전 전개”를 주문했다.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통한 검찰개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검찰, 언론, 우파들이 총결집한 대대적 공격이 시작된 이유를 여기서부터 찾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엄청난 마녀사냥이 벌어졌고 거대한 혐오, 낙인, 편견이 부추겨졌다. 모든 마녀사냥이 그렇듯이 조국 교수의 가족은 당연히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희생양이 아니었고, 그러한 인간적 결함과 약점들은 마녀사냥의 불쏘시개가 됐다. 마녀사냥의 일반적 메커니즘은 분명하고 강력하게 작동했다.

압도적인 양의 기사와 보도들이 쏟아지자 여론은 거기에 동조하게 됐다.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자 사람들은 더욱 더 주류적 의견에 줄을 섰다. 혐오의 감정은 쉽게 전염됐고,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고립의 압박을 느껴서 침묵하거나 논쟁을 회피하게 됐다. 극단적 주장들이 더 힘을 얻게 됐고 그것에 어긋나는 입장은 걸러졌다. 편견이 더욱 강화되면서, 지나친 공격도 합리화되고 공격받는 사람의 고통에 사람들은 둔감해졌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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