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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 [CJ ENM]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스스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늘 고민해왔다.”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의 신작인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24일 국내 개봉을 앞둔 가운데, 전날인 23일 한국 기자들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어떤 선입견도 없이, 마치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인 것처럼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봐주시면 좋겠다. 제 영화를 보시고 ‘이 사람의 영화는 이렇지’ 하는 고정관념을 언제나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대구개인회생전문 평생을 몸담았던 제지업체에서 해고된 가장 만수의 연쇄살인을 다룬 작품으로, 지난 8월말 열린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이달 초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상영됐다. 당초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평론가들과 외신들의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1등상인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측됐으나 본상 수상은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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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열린 베네치아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박찬욱 감독. 그는 레드카펫에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AP·연합뉴스]





예금은행순위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만수(배우 이병헌)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 번의 살인을 감행한다. [CJ ENM]



박찬욱 감독은 “앞으로 베네치아영화제보다 (베네치아영화제에 이어 찾았던 캐나다의) 토론토영화제만 갈까 싶다”고 농담하면서 “실은 베네치아영화제의 본상 수상보다 mp3제공 도 ‘배우 이병헌의 남우주연상’을 더 희망했다. 이병헌 배우가 워낙 잘 하는 데다가 다른 작품(경쟁 부문 진출작)을 못 봐서 아쉽지만 남우주연상은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그러나 상을 받는다는 건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판단 때문인데, 흥행이란 것도 돈을 많이 벌고 아파트매매대출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한 명의 관객이라도 이 영화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고 이건 모든 영화인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지업체 재취업을 희망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한 만수는 자신의 재취업에 방해가 되는 경쟁자를 추적해 차례대로 살인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과연 선한 동기가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객석에 남긴다. 만수 역에는 배우 이병헌, 만수 아내 미리 역에는 배우 손예진이 출연했고 배우 박희순·이성민·염혜란·차승원이 ‘피해자’로 등장한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의 아내 미리(배우 손예진)와 딸 리원(배우 최소율). [CJ ENM]



만수는 아내 미리를 비롯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감행한다. 살해의 동기가 가족 때문인데, 가족을 위한 살인이 만수의 행동을 정당화하느냐의 질문이 남는다.

박찬욱 감독은 “사실 만수의 살인 동기를 관객이 (더 극적인 요소를 통해) 이해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장기 이식이 필요하다든가, 완벽하게 전락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거나, 아이들 밥도 먹이지 못할 정도라거나 하는 장치를 만들면 관객을 이해시킬 순 있다”면서도 “그러나 행동이 어리숙하고 범죄를 회피하고 싶은 만수를 보면서, 어떤 관객은 만수에게 과몰입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고 가족과 이제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고, 또 어떤 관객은 ‘아무리 그래도 연쇄살인인데 저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만수에게 관객들이 마음을 줬다가 다시 거둬들이게 하는 것, 저 상반된 두 마음을 나란하게 평행선으로 가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 [CJ ENM]



만수의 범행은 가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의 범행은 아내 미리와 아들 시원에게 발각된다. 남편과 아빠의 살인을 아내와 아들은 용인할 수 있을까. 이런 설정은 ‘어쩔수가없다’의 원작소설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도끼’에도 나오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엄마(미리)의 거짓말로 봉합은 했지만 아이에겐 엄청난 트라우마일 수 있다. 만수를 용서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더라도 아주 힘든 시간이 만수에게 예정된 것”이라며 “예전처럼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족들이 자신의 범죄를 알게 되면 만수의 노력은 뭐가 되는가. ‘그 일(연쇄살인)’ 때문에 가족들이 만수를 배제하게 된다면, 밀어내게 된다면 모두 다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 없는 내용을 각색하면서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거리’에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찬욱 감독은 “와이드 앵글로 펼쳐놓고 롱테이크로 찍어 관객과 인물의 거리를 차갑게 유지하는 영화가 있고, 아주 가깝게 해서 감정을 동일시시키는 영화가 있다”고 구분하면서 “하지만 제 영화 인생 전체에 걸친 저의 목표는 ‘적절한 균형과 적절한 거리’다. 감정적으로 또 동시에 구성적으로 음미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도덕적인 질문을 관객들이 하게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영화는 나무, 치통, 첼로 등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CJ ENM]



영화에는 상징과 은유가 적지 않다. 결국 재취업에 성공한 만수가 공장에서 포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공장은 AI로 인한 완전 자동화 장비가 설치됐고 지금은 시험가동 중이다. ‘시험가동’ 중이므로, 경쟁자를 제거해 재취업에 성공한 만수가 다시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만수가 공을 들여 키우는 나무의 분재 장면도 상징으로 가득하다.

박찬욱 감독은 “인위적으로 관리하고 잘라내고 구부리고 영양을 주고 애지중지 관리해야 하는 나무 한 그루를 만수가 키우는데, 그가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구부리다가 결국 나무가 부러지고 만다. 굉장히 폭력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만수의 치통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미루는 건 만수의 ‘똥고집’스러운 성격을 보여준다. 3개월 안에 취직한 뒤 치과 진료를 그 뒤에 하겠다고, 자신이 정해놓은 생각대로만 움직이려는 고지식하고 어리석은 사람, 그런 남자로서의 만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 [CJ ENM]



만수는 영화에서 ‘세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날 “원래 만수가 죽이는 살인은 네 번이었는데 분량 관계로 세 번으로 줄였다”고 털어놨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쟁자를 따라간다. 조깅하러 간 사람을 따라가서 죽이려는 에피소드인데, 이 피해자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같은 제지산업에 종사했던 만수를 알아본다. 그 피해자가 최근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고 털어놓으면서 만수는 ‘아,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엉엉 울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가 ‘너무 작은 회사라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만수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네 번의 살인을 세 번의 살인으로 줄이면서 이 장면은 촬영 때는 배제됐다”고 귀띔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선입견에 대해 “제 작품을 보시고 ‘잔인하고 끔찍하다, 노출과 성적인 묘사가 잦다, 배배 꼬인 이야기다, 뒤틀렸다, 변태적이다’라고 이야기가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박 감독에게 변태 같다는 이야기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의 변태에 가까울 것’이란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늙은 변태 같아 보인다는 말, 그건 정말 최악”이라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열린 베네치아영화제에 참석한 ‘어쩔수가없다’의 주역들. 오른쪽부터 박찬욱 감독, 배우 박희순·손예진·이병헌·염혜란·이성민.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