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남성이 경제권을 독점하는 사회는 '자연'스럽지 않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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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2013년 경향신문과 여성 일자리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미니멈 크리티컬 매스(최소 임계 질량)’이라는 개념을 꺼내들었습니다. 실질적인 성평등을 실현하려면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 인력을 ‘인위적으로’ 확보해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였습니다. 암컷이 중심이 되는 동물사회와 달리 인간사회는 남성이 경제권을 독점하며 여성을 지배해왔는데, 최 교수는 오히려 이 상태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여성 할당제는 “기울어진 추의 균형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7년이 지난 지금, 가정과 일터에서의 성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논의는 얼마나 진전됐을까요. 플랫팀이 7년전 최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보는 남녀 역할
진화론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행동생태학)는 여성친화적인 생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토콘드리아 DNA’ 등을 근거로 “생물학적인 족보는 여성의 혈통만 기록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해 호주제 폐지(2005년 3월)에 기여했다. 또 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스승이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번역해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저서로는 <통섭적 인생의 권유>, <통찰>, <다윈지능> 등이 있다.
경향신문 여성일자리 특별취재팀은 일과 자녀양육에서 남녀 역할에 근원적인 갈증을 풀고 싶었다. 똑부러진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법을 찾는 데 최 교수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지난달 대학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남녀 모두 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양성평등, 양성협력 시대가 돼야 한다”며 “남자들도 뭔가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짐을 덜어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물계에 빗대어 쉽게 풀어준 설명은 얼핏 듣기에 따라 남녀 모두 거북해 보이는 점들도 있지만 곱씹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다음은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요즘 여성 임원이 늘어나는 등 사회에 변화가 보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여성 임원을 많이 늘리라고 얘기했다. 한 10년 전에 삼성그룹 임원 워크숍에 가서 특강이라는 걸 처음 해봤다. 강연하고 끝나면서 “내년부터는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더니 ‘강연은 재밌게 잘 해놓고 왜 그렇게 거칠게 얘기하냐’는 분위기로 쳐다보더라.
그래서 “지금 이 방 안에 백몇십명 신임 임원이 있는데 지금 보니까 여성 임원이 딱 2명이다. 이렇게 가면 삼성 망한다. 지금 세계적인 리더들이 여성이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조직, 국가가 21세기에 살아남겠다는 꿈은 깨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삼성에 여성 임원이 고작 2명이라니. 50%를 채우면 부르고 아니면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그러더라. 최근엔 적극적으로 하는 모양이다. 작년에 보니 옛날보다는 여성 임원이 많아졌더라. “삼성이 변하는가 보네요. 그러나 속도가 느리다”고 얘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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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 재직할 때 여교수회에 특강을 위해 불려갔다. 여교수회가 여학생이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데 여자 교수는 너무 턱없이 적다, 말도 안된다고 이슈를 삼았다. 참 신기하게도 서울대 여교수들 중에는 그걸 싫어하는 분들이 있더라. ‘내가 왜 구걸을 해?’ 이렇게 나왔다. 이미 서울대 교수가 된 자존심 센 여성 입장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는 순간 남성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되니까. 자기는 (그 벽을) 뚫어왔고 앞으로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는 거다.
그때 제가 강의하면서 이를테면 정원의 30%를 총장실을 점거하든 뭐하든 무조건 따내야 한다고 말했다. 뜻밖에 여자 교수들이 그런 거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치더라. 그때 제가 뭐라고 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여성 전체의 문제다. 자존심 상하는 얘기지만 한번쯤은 거쳐가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 30%를 달라는 게 불합리한 것처럼 보여도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전체로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악착같이 하라고 했다. 과연 합리적인 요청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드러누워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떠난 게 2006년인데 그 무렵에는 생명과학부에 여자 교수가 전에 딱 한 분이었는데 그뒤 다섯 분인가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니멈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참 중요하다. 최초로 여성 임원, 여성 학장이 최초로 나타났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중심 세력권에 여성의 크리티컬 매스가 있고, 그분들이 합심하면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그 정도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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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수컷들 중에 5%만 성공적이고 나머지 95%는 좀 떨어진다. 반면 암컷들은 다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인간을 포함해서 암컷들 간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수컷들은 변이가 크다.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려보면 암컷들은 평균이 있는 가운데에 볼록하게 몰려 있다. 수컷 그래프는 평평하다. 수컷은 잘난 놈도 많고 무지하게 못난 놈도 많다. 서머스 총장은 아주 잘난, 끝에는 남자들이 더 많다고 한 거다. 하버드대 교수가 된 최상위권에는 남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 건데 서머스 총장이 워낙에 사람이 좀 싸가지가 없이 말하다 보니…. 그런가 하면 감옥에 있는 사람도 대부분이 남자다. 못난 놈도 수컷이 많고 잘난 놈 중에도 수컷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인생에서 커브의 오른쪽에 가 있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 다음부터는 상황에 따라서 노력에 따라서 누구나 다 성공한다. 약간 평준화돼 있는데 성실한 여학생들이 수학을 거의 더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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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녀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농경시대에는 남자가 농사짓고 곳간 열쇠를 손에 쥐고 여성을 지배하니까. 이런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선 여자가 굽혀야 했다. 그러나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책 <제1의 성>을 보면 21세기 말에는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의 경제력을 능가한다고 나온다. 피셔는 더 이상 직업세계에서 근육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현대 직업사회에서 근육으로 하는 일이 뭐가 많나. 이제는 두뇌 싸움이고 네트워킹이다. 두뇌 싸움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훨씬 잘한다. 여성의 경제력이 능가하면 더 이상 여성이 자신보다 돈 많은 남성을 구할 이유가 없다. 고등학교 애들한테 물어보면 내 말 잘 듣는 애 원한다. 여성들도 자신이 벌어서 쓰면 되는데 뭐하러 돈 잘 버는 애를 구하느냐. 잘 생기고 예쁘고 다정한 애들 선호한다.
저는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을 능가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여성의 경제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혼자서 적절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 뭐하러 남성을 선택하느냐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3분의 2가 '결혼을 꼭 해야 하나, 그런데 아이는 가지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남자들에게 굉장한 부담이지만, 자신이 부양할 책임이 없으면 낳을 수 있는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산다. 그러면 그때 남성은 끝장난다. 결혼제도는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그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남성은 아주 심각해진다. 온갖 아양을 다 떠는 남자가 나올 수도 있다. 커피 뽑아서 주고 계속 얼쩡거려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회사 끝나면 그 많은 남성들이 여성 찾아서 거리를 배회하는 거다. 곰도 그렇게 살고 있고 호랑이, 심지어 모기도 그렇다. 인간만 어떻게 보면 면했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매일 자기 파트너를 찾아 다녀야 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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