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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그 시대의 슬픈 초상 - 영자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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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작 원작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75년에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그 당시로는 큰 성공인,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몸을 파는 여자를 주연으로 한 영화의 붐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시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영자(염복순 분)는 서울로 올라와서 부잣집의 식모 노릇을 하며 그 집에 얹혀 살아가게 된다. 그 집 주인이 경영하는, 집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공원으로 일하고 있던 창수(송재호 분)는 사장의 집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창수는 군에 입대하면서 영자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다짐하지만 영자는 주인집의 아들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이 사실을 안 주인 아주머니에게 쫓겨나게 된다.

 영자는 아는 언니의 방에 얹혀 살면서 봉제 공장에 취직하지만 외상값을 빼면 동전 몇 개만 남는 저임금에 그만 두고 버스 차장이 되는데 어느 날 그만 교통사고가 나서 왼팔을 잃게 된다. 그녀는 산재보상금으로 받은 30만 원을 고스란히 어린 동생들이 남아 있는 고향에 송금하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사창가의 창녀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한쪽 팔이 없는 불구의 몸으로 사창가에서도 남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데 예쁜 얼굴 덕에 그나마 단골을 확보해서 밑바닥 생활을 영위하다가 단속에 걸려서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된다. 마침 월남에서 돌아와 제대한 창수가 동네 건달들과 싸우다가 훈방되면서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함께 경찰서를 나오게 되지만, 불구가 되고 너무나 험한 삶에 찌들대로 찌들어 변해 버린 그녀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창수는 제대 후에 목욕탕의 때밀이로 취직하게 되는데 영자의 단골이 되어 그녀만을 찾아가지만 몹쓸 성병에 걸리자 함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가 더 이상 치명적인 성병을 안고 살지 않도록 저금해 놓은 돈을 몽땅 털어서 매일 그녀를 찾아가 그녀가 자기 이외에는 손님을 받지 않도록 해서 그녀가 다시는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영자는 그 동안 쌓인, 일방적으로 계산된, 악덕 포주(도금봉 분)에게 진 빚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그만 두지도 못하지만 사창가를 소탕하려는 경찰의 엄한 특별 단속에 포주와 창녀들이 모두 끌려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간신히 사창가를 도망쳐 나와서 천우신조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목욕탕 지하의 기관실에서 때밀이 일을 하던 창수를 기다리다가 두 사람의 모든 사연을 알고 있는 늙은 기관장(보일러공 : 최불암 분)이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인간 관계와 1 빼기 1은 0이 되는 인간 관계를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해 주자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창수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창수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셈법은 여자에 대한 고루하고 케케묵은 정조 관념을 위시한 성차별과 창녀에 대한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금석지감이 드는 성관념과 성윤리다.

 창수는 영자를 찾아다니다가 그의 소원대로 착실하게 돈을 모아서 세탁소를 차려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수소문 끝에 오토바이를 타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허름한 밥집을 하면서 다른 남자(이순재 분)의 여편네가 되어 애를 낳아서 기르고 있는 영자를 찾아가게 된다. 영자의 남편은 아내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창수가 아니냐고 넘겨짚으면서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창수는 흔쾌히 승낙하고 두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자의 복잡다단하고 서글픈 표정을 카메라가 잡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조선작 원작의 단편 소설에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사창가를 탈출한 영자가 창수와 함께 살 전셋방을 마련하기 위해서 포주에게 맡겨 놓은 몫돈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사창가에 들어갔다가 의문의 화재로 그 포주와 다른 두 창녀와 함께 불에 타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는 참혹한 비극으로 끝나지만 영화에서는 현실 긍정의 서글픈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에는 울고불고 하는 신파가 없다. 그러나 깊은 절망과 수심을 담고 있는 염복순의 표정 연기는 이제는 중년이나 초로가 된,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 시대, 암울했었던 기층 민중들의 애환을 염세적인 필치로 리얼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어떤 매춘 영화에 비해서도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다. 여기저기서 밑바닥의 삶을 전전하며 박해를 받고 공격을 당하는 주인공에게 이 척박한 사회는 한줄기 희망의 빛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기댈 곳 없이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처녀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대우라는듯이...

 그러나 이런 절망과 치욕 속에서도 주인공은 현실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비록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삶에의 실낱 같은 가녀린 희망을 놓지 않고 현실에 맞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억척스러움은 낡은 사회의 강압적인 정조 관념과 성차별 속에서도 당당히 맞서서 인간의 존엄함과 참된 가치를 온몸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영원히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는 아련한 추억 속의 사람이 돼 버렸다.

 다른 영화들은 모두 실패했고 TBC TV 탤런트로서도 활약했었지만 불륜을 다룬 드라마의 주연이 됐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으로 조기에 종영되고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삼십줄에 들어서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국내에서의 연예인 생활을 접고 오래도록 잊혀진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 영화 사상 잊혀지지 않을 한 청순가련한 여인상으로, 기층의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자 도구에 불과했었던 그 시대의 슬픈 초상으로 영원히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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