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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 한민족문화학회, 그리고 한국작가회의 세계문학위원회(위원장 고명철 문학평론가)가 공동 주최·주관하는 학술포럼 '김석범의 문학 세계, 아시아의 반전평화와 세계문학'이 27일(수) 오후 1시 광운대 한울관 304호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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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사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김석범 작가의 문학 세계를 톺아보면서, 무국적자로서 '탈식민 해방'을 위해 평생 걸어온 김석범의 길을 함께 성찰해보는 자리로 열렸다. 
김석범은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제주 출신으로, 김석범을 뱃속에 품고 밀항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간사이대학교 경제학과,뉴보텍 주식
교토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76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화산도'가 대표작이다. 
1983년에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을, 1998년에는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는 이미 김석범 만의 독자적인 문학성을 높이 평가했다. 2015년에 제주4.3평화상을, 2017년에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받으며 코오롱생명과학 주식
국내에서도 김석범의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포럼은 김석범의 주요 작품을 고찰하면서 의미를 공유했다. 발표자는 조수일(한림대 일본학과) 이혜진(세명대 교양대학), 이은란(광운대 인제니움학부), 장은애(국민대 한국어문학부), 고명철(광운대 국어국문학과) 등이다. 

토론은 좌장을 맡은 김환기(동국대 일본학릴게임다빈치
과)를 비롯해, 권성우(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김계자(한신대 평화교양대학), 이명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하상일(동의대 국어국문학과) 등이 참여했다.




김석범 탄신 100주년 학술포럼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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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으로서 김석범 문학...앞으로 남은 과제는?
발제자로 나선 조수일은 '김석범 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발표했다. 그는 "김석범 문학은 한국문학 혹은 일본문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작품으로서 한국의 시공간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김석범 문학 연구의 과제를 세 가지로 꼽았다. 바로 ▲김석범의 삶과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연구 ▲김석범의 문학적 영위와 인적 네트워크를 면밀하게 탐구해 한일의 근현대사, 한일 지식인과 재일 지식인 간 연대의 역사를 되짚는 연구 ▲김석범의 저작에 대한 번역 등이라고 강조했다.
조수일은 "김석범은 4.3을 직접 겪지 않은 비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70년여 년에 걸쳐 4.3을 자기 문학세계의 테마로 삼아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한 김석범의 문학세계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일의 근현대사는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일본-북한이라는 삼중의 힘에 영향받아온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수일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 김환기는 세계문학으로서 김석범 문학의 가치를 강조했다.
김환기는 "세계문학이란 이언어(異言語)의 세계를 내포하는 표현언어를 사용해 작품이 쓰이는 발상지를 쓰여지고 있는 순간부터 월경(越境)하는 것, 세계문학이란 작품세계 내 로컬의 역사적 시공간이 지니는 고유성과 특수성이 인간세계의 힘의 관계라는 보편성을 환기하면서 이향(異郷)의 역사적 시공간에 울림을 주는 것, 세계문학이란 역사·사회·정치·예술·자유·생사·우애·배신 등을 둘러싸고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하며 독자를 사유의 끝까지 유도하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시한 이언어 글쓰기의 월경, 보편적 가치·글로컬, 의식·무의식의 총체로서의 힘·흡인력을 김석범 소설을 통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세계문학으로서 김석범 문학의 가치를 평가했다.
김환기는 "해방정국을 치열하게 얽어낸 '화산도'를 활자화된 텍스트에만 매달리지 말고 글로벌 문화경쟁력을 효과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드라마,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의 장르로 발신·확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일조선인들에게 '해방'은 무엇이었나
발제자 이혜진은 김석범이 1971년부터 73년까지 집필해 197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1945년 여름'을 통해,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의 가치란 무엇이었는지를 짚었다.
'1945년 여름'은 "자신 안에 있는 '왜인"을 의식하면서 "반항할 수 없는 주박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재일조선인 2세 청년 김태조(光山, 미쓰야마)를 화자로 설정한 작품이다.  
이혜진은 "해방·패전 직후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인'에서 '외국인'으로 이행하는 단절을 겪었고, 곧 '민단'과 '총련'으로 분열돼 상이한 정치적 선택의 길을 걸어야 했다"며 "'민단'이 미국과 남한의 반공체제와 연결된 반면, '총련'은 북한과 소련·중국의 사회주의 진영과 결합돼 있었다는 점에서 재일조선인 사회의 분열 양상은 냉전 구도의 구조적 대립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념적 시험장으로 기능했다"고 한국과는 또 다른 재일조선인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석범의 '1945년 여름'은 재일조선인의 해방 경험을 민족적 귀환의 서사로 회수하지 않고, 제국의 유령적 잔존과 분단의 폭력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된 주체의 목소리를 소환하면서, 해방을 하나의 완결된 사건으로 정립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상사적 과제로 재사유해야 함을 요청한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이 작품은 김석범이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을 직시하면서 제주4.3을 사건화 하는 작업으로 나아가는 사상적 전환점으로 연결하는 계기를 형성한다. 이로써 해방은 종료된 과거가 아니라 '누가 해방되었는가, 해방의 시간은 누구의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여전히 사유해야 할 과제를 던져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학술포럼 현장 ⓒ제주의소리


제주4.3의 진정한 정명까지 바라본 김석범
발제자 이은란은 김석범이 2012년에 발표한 소설 '과거로부터의 행진'을 통해 재일제주인 조작간첩 문제와 제주4.3의 정명 문제까지 살펴봤다.
소설 '과거로부터의 행진'은 1984년 재일유학생 간첩조작 피해자로서 역용공작을 강요받은 '한성삼', 역용공작의 대상인 소설가 '김일담', 1991년 제주도에 불법입국·강제 송환된 '고재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이은란은 비교적 최신작인 '과거로부터의 행진'이 재일의 현실을 선명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비국민 제주빨갱이'로서의 삶을 택한 김일담이나 한성삼과 달리, 고재수는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으로의 변경을 결심한다. 그런데 고재수의 결심에는 '환대'로 위장한 국가의 공작과 '제주 4.3 유족'이라는 그의 자각이 복합돼 있다"고 밝힌다.
또한 "2000년대에 이르러 김석범이 재일제주인 조작간첩문제를 소설화한 것은 '65년 체제' 이후 재일제주인을 철저히 소외시켜 온 글로벌 내셔널리즘의 폭력을 고발하고, 현재 우리가 자명한 진실이자 존립근거로 믿는 '국가'와 '세계'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통렬한 물음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은란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이은란은 "제주공항 지하 3층에서 나온 '한 마리의 흰 강아지'는 깊숙한 지하의 어둠에 매장되어있던 망자들을 지상으로 이끌고, '산에서 나무꾼이 데리고 내려온 누렁개'는 망자들의 긴 행렬을 맞이한다. 그리고 행진에 앞장선 두 마리의 개는 산으로 향하는 망자들의 길을 열어준다. 공항 지하에서 나온 '흰 개'가 고재수를, 산속 '누렁개'가 한성삼을 상징한다면, 이들이 망자의 행진을 이끄는 존재라는 점은 제주4.3의 진정한 정명이 '국민·비국민'이라는 견고한 이분법을 초월할 때 비로소 도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조선적과 한국적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두 재일제주인의 '행진'은 제주4.3이 결코 '비국민의 역사'로 배제돼서도, '국민의 역사'로 편입돼서도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의 산물로 읽힌다"고 강조했다.
이은란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 하상일은 "1965년은 한일협정과 베트남파병이 이루어진 해"라며 "1965년 6월 국회를 통해 이러한 합의를 명문화한 한일기본조약을 통과시켰고, 8월에는 한일협정을 전제로 약속했던 베트남파병동의안마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통과시킴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패권 정책을 선도하는 전위부대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65년 체제의 모순이 결국 재일조선인 사회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 점, 특히 재일조선인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구체화된 점 등에 대해 발표자는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석범은 제주4.3을 직접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4.3의 역사적 진실에 뿌리 내린 생생한 증언과 사건에 바탕을 둔 화산도라는 대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그가 제주를 정신적 고향으로 내면화한 재일조선인이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화산도' 읽기
발제자 장은애는 소설 '화산도'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을 바라봤다. 그는 "화산도에서 여성인물의 재현은 한계와 가능성을 노정한다. 하지만 인용한 작가의 말은 '화산도'의 여성 인물의 '소외된 위치' 자체가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랬을 때 한계를 가능성으로 역전시키는 힘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단해진 것을 둘러싼 침묵을 헤아릴 뿐만 아니라 그 억압을 발생시키는 가려진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드러' 내려는 의지 속에서 실현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존재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수난자의 표상을 발견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수행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며 "즉, 여성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인지함으로써 차별과 배제를 야기한 구조적 모순을 간파하고, 인식론적, 실천적 개입을 통해 비대칭적 권력 구도를 조정하고, 이상의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윤리적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해석적 지평을 확장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소설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학술포럼 현장 ⓒ제주의소리


서구 문학에 익숙한 시선 탈피하고, 다시 보는 '김석범'
발제자 고명철은 김석범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 나타나는 ▲탈식민 혁명 ▲제주 무속 ▲제사 의례와 음식 문화의 가치를 추려내 눈길을 끌었다. 
고명철은 "김석범의 삶과 문학을 살펴볼 때마다 이명(耳鳴)으로 떠도는 말이 있다. '죽은 자는 지상에서 살 수 있는 우리들 안에 함께 있다'가 그것이다. 이 말은 김석범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듯, '김석범'이란 경이로운 존재를 넓고 깊게 궁리하는 데 열쇳말이자 바탕이며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실, '죽은 자는 산 자 안에 존재한다'가 함의하는 김석범의 기억 투쟁은 그가 진력하고 있는 인간 존재의 역사문화적·정치윤리적 문제에 대한 문학 성취를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고 정의했다.
고명철은 "제주의 '토착적 근대'와 4.3혁명은 김석범 문학에서 4.3의 지옥도를 살아내고 그것에 맞서 저항하는 제주 민중의 모습을 주목하도록 한다"면서 김석범의 문학은 서구 중심으로 이해하는 문학관과는 다른 시야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구 근대의 문학 교육과 유무형의 제도로 공고히 자리한 근대 문학에 대한 지식과 교양의 산물로서의 세계문학으로는 김석범 문학의 실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기존 세계문학의 이해 지평과 다른 차원의 지평에서 김석범 문학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그럴 때 김석범 문학에 대한 문학사상사 및 미학 논의는 '국민문학의 틀을 벗어나 세계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염두에 둔, 달리 말해 구미중심의 세계문학 질서에 공모·수렴·재구축하는 것과 다르거나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문학을 발견·기획·생성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나아가 "김석범은 역사문화와 사회생태가 깃든 '토착적 근대'에 대한 서사적 탐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명철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 이명원은 "개인적으로 '화산도'를 읽으면서 이 소설이 이중적 구조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을 이방근을 포함한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유럽적 자기형성소설(bildungs roman)에 가까운 존재론적·실존적·정치적 의식을 첨예하기 드러내는 모더니티의 층을, 부엌이로 상징되는 야생의 냄새를 뿜어내는 민중들은 자연에의 생명력으로 충일한 토착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석범의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강렬한 힘과 매력은 이 두 층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단되거나 고립되지 않고 그야말로 상호 교통(communication)한다는 점에서 빚어지는데, 이 교통의 밀도가 친화력에 가깝건 아니면 반대로 서청과 같은 적대적인 대립구도로 나타나거나를 가리지 않고, 구심적인 내면성과 원심적인 행동성 모두를 치밀하게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