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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실비아 페데리치는 여성운동가 셀마 제임스의 급진적인 아이디어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것은 ‘여성의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엄청난 영감을 받았어요!” 페데리치는 회상한다. 1972년 그는 제임스의 동료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와 함께 ‘국제페미니스트단체’를 설립하고 ‘가사노동에 임금을’(Wages for Housework) 캠페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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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치가 1974년 노동절에 뉴욕 길거리에서 돌린 전단지는 도발적이면서 명쾌했다. ‘공짜 노동은 이제 그만’이라는 제목의 전단지는 “집에서 이뤄지는 요리, 청소, 육아, 노인 돌봄, 정원 가꾸기, 장보기, 수리하기 등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할 수도 없고, 남에게 나눌 수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매경증권센터
받지 못한다. 이 노동에 가격이 매겨진다면 사회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페데리치의 캠페인은 좌파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운동가들의 반발까지 샀다. 좌파는 산업노동계급의 혁명적 중심성을 위협한다며 반발했고, 여성운동가들은 비현실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랑과 헌신이 깃든 가사노동바다이야기하는법
은 자본주의가 오염시키지 않은 마지막 영역이라며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의 가부장제’는 현재까지도 반자본주의 여성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페데리치가 1970년대 중반부터 2020년까지 쓴 글 7편을 모은 것으로 그의 사유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다.
책은 첫장부터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이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굴증권커뮤니티
러가게 만들고 있는 거대한 기반이라고 폭로한다.
“집안일은 임금 노동자에게 육체적, 감정적,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날마다 임금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우리 아이들-미래의 노동자들-을 출생에서부터 학창 시절까지 돌봄으로써 그들 역시 자본주의에서 기대하는 방식으로 일하게끔 보장한다. 이는 모든 공장, 학교, 사무실, 광산 뒤에는증권사선택
그런 공장, 학교, 사무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재생산하는 데 평생을 소비하는 수백만 여성의 숨겨진 노동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실비아 페데리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은 가사노동이 무임금이고 비가시적으로 취급되는 것을 ‘임금의 가부장제’라고 명명하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지탱해 왔는지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페데리치가 보기에 ‘가족’이란 ‘여성의 무임금 노동, 그리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무임금 의존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같은 가족 제도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남성들은 노동을 거부하고 싶을 때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노동을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중 장치가 된다.
여성의 무임금 노동은 여성이 무보수로 일하는 데 익숙하게 만들고 저렴한 임금도 수용할 정도로 돈이 절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본가에게 이득이 된다. 일자리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임금이 낮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런 맥락 때문이다.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은 남성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책은 주장한다. 자본가는 더 높은 생산성과 더 집약적인 노동 착취를 짜내기 위해 남성 노동자가 집에서 편하게 쉬고 나오길 바란다. 남성 노동자 역시 퇴근 뒤에 온전히 쉬고만 싶을 뿐 가사노동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



임금의 가부장제 l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안숙영 옮김, 에코리브르, 1만8000원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페데리치는 마르크스주의의 유용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여성 억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긴 하지만, 임금노동만을 중심에 두고 있어 가사노동과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축소하거나 외면했다고 그는 비판한다. 그리하여 공장 밖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 역학을 놓치고 무임금 노동과 자본주의 관계는 간과했다고.
페데리치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진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임금이라는 이유로 집에서의 여성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미국 자본이 노예 노동과 임금 노동을 바탕으로 건설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미국과 전 세계의 들판·부엌·그리고 감옥에서 이루어지는 수백만 명의 여성과 남성 그리고 어린이의 무임금 노동으로 번창하고 있다는 걸 간과하는 것이다.”
그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는 단순히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여성 착취를 가시화하는 정치적 요구이자, 가사노동을 ‘자연스러운 여성성’ 또는 ‘모성’으로 미화하는 자본의 전략을 해체하는 시도였던 셈이다.
책은 프롤레타리아 가족 형태가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형식으로 발달한 역사와 가사주부와 성노동자라는 두가지 여성화된 노동자의 역사까지 파헤친다. 19세기 말 자본주의가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노동자 신체에 대한 돌봄이 필수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남성 노동자를 돌보는 가정주부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됐다. 또 남성 노동자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성 노동자의 필요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페데리치의 주장은 70년대 기존의 좌파와 여성주의 이론에 균열을 내며 학문적 기여를 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젠더적 맹점을 명확히 지적하며 ‘생산/비생산’의 이분법을 비판했고, 돌봄, 육아 등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정의했다. 또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책의 일부 글들은 70년대 당시 ‘가사노동에 임금을’ 캠페인을 두고 오가던 논쟁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읽히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제대로 평가·보상받지 못하고 있기에 페데리치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어떤 노동이 가치 있는 노동이며, 그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