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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




요조님, 안녕하세요. 저는 불혹을 넘어가고 있지만, 병원 처방전에 찍혀 나오는 ‘만 39살’ 나이에 애써 안도해 보는 실제론 ‘41살’인 인간입니다. 저는 10대 때부터 ‘여기보단 더 나은 곳이 있을 거야. 꼭 거기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 살아왔어요. 이상하게도 그 믿음이 있으면 지금 엄청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어도릴게임총판
계속해 나갈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꾹꾹 참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니 어느 순간 그 희망이 쑤욱 빠져 날아가버렸습니다.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나라는 인간의 중심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에요.

사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것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진짜 늦은 것 같아요. 언젠간 그 신화창조주식연구소
꿈을 이뤄서 ‘나은 곳’에 가리라 믿고 견딘 10대, 20대, 그리고 30대에도 현실을 사느라 급급해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발도 담그지 못했네요. 앞으로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가 너무 막막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이상만 컸던 걸까요. 아니면 도전도 못 해보고 우는소리 하는 덜 자란 한심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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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을 읽다 보니 ‘아직 덜 자랐다’는 사실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전도 못 해보고 우는소리 하는 덜 자란 한심이’라고 끝맺음해 주셨는데 앞서 시작하시면서는 실제보다 두살 어린 만 나이에 ‘애써 안도한다’고 쓰셨어요. 아직 덜 자랐다는 사실은 사연자님께 안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동시에 못마땅한 이야기이대박주
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자, 저는 이제부터 사연자님을 ‘덜자란님’이라고 불러볼 참입니다. 이 호칭이 어떠신가요. 이 호칭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안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못마땅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세상이 결국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진짜 이야기와 가릴게임야마토
짜 이야기, 그리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이야기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돈을 벌어다 주거나 빼앗아 가고, 사랑을 시작하게도 끝나게도 하며, 종교와 사기가 공존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에서 삽니다. 덜자란님 역시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만들고 꼭 거기 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라는 기준으로 인생을 바라본다면 지금 느끼시는 ‘텅 비어버린 듯한 공허’는 실패나 한심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진 자연스러운 순간이 온 것일 뿐이지요. 나이를 먹고 현실을 더 알게 된 만큼, 오래전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덜자란님을 설득하지 못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름철 대삼각형 l 이주혜 지음, 민음사(2025)



새 이야기가 필요해진 덜자란님을 보니 “이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떠오르네요. 이주혜 소설가의 ‘여름철 대삼각형’(민음사, 2025)은 그야말로 이야기와 인간의 한판 승부 같은 책입니다.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도 하고, 이야기가 인물을 끌고 가기도 하다가,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합쳐져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소설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는 ‘이야기’라는 실체를 거듭거듭 주목하며 읽어 나가게 하는 매력적인 새삼스러움이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세 주인공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는 틈틈이 ‘이야기’라는 것의 속성을 가늠해 보게끔 하는 여러 키워드들이 등장하거든요. 별자리랄지, 가족이랄지, 악몽이랄지 등등으로요.

특히 그중 ‘악몽’에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는 꿈을 자꾸 꾸던 송기주라는 인물이 당시 같이 살던 할머니와 나눈 대화인데요. 송기주는 할머니가 자신의 악몽에 속이 상할까 봐 매번 악몽을 꾸며내고, 할머니는 그 모든 악몽을 길몽으로 해석합니다.

커다란 까마귀가 날아와서 내 새우깡을 봉지째 물어 갔어.

그깟 새우깡, 할미가 또 사주면 되지.

이따만 한 검은 잉어가 수조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꼬리로 내 뺨을 때렸어.

아가, 검은 물고기는 금전운이다. 오늘 할미 돈 많이 벌려나 보다.

방에 혼자 있는데 난로가 팡 터져서 집에 불이 났어.

아이고, 집이 불타는 꿈은 길몽 중의 길몽이란다! 할미 복권 사야겠다.

상대를 애틋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어린 송기주와 할머니의 막상막하의 마음이 참 대단하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30년간 믿으며 살아온 덜자란님 역시 이 두 사람에 필적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덜자란님, 그 힘으로 우리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향후 30년간 믿어보기로 하지요. 예전처럼 ‘언젠가 더 나은 곳에 닿을 거야’라는 미래형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현재형으로 말입니다. 미래에 맞춰진 이야기 속에서 덜자란님의 꿈과 삶은 계속해서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현재로 옮겨온 시점 안에서는 이룰 수 있는 꿈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꿈을 향한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테니까요. 모쪼록 덜자란님의 새 이야기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명륜동에서,

덜자란님처럼 여전히 덜자란 요조 드림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요조 뮤지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