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본] 인테리어뉴스

해초 개척자들 활동가. 해초 제공


“구호품을 실은 배들이 무사히 가자지구 해안에 도착할 수 있을 때까지 구호선단의 행렬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구호선단 첫 한국인 참가자인 해초(27·김아현) 활동가는 13일 새벽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화운동공동체 ‘개척자들’ 활동가인 그는 최근 ‘가자로 가는 천개의 마들린호’(천개의 마들린)에 참여해 가자지구 봉쇄를 뚫으려다 이스라엘에 나포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각) 풀려났다.
11척의 배에 150명 참가자를 태운 선단은 지난 27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출발했다. 선단은 애초 항해 10일차에 가자지구 해안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이었으 고사장 나, 가자전쟁 2년이 되는 10월7일에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바다 위에 머무르며 일정이 늘어났다. 해초는 “자유함대연합(FFC)의 컨션스호가 합류할 때는 굉장히 큰 힘을 받는 흥분되는 순간도 있었다”며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고 나포 상황 훈련을 했던 항해는 좋은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나포는 항해 11일만인 지난 8일 새벽 이뤄졌 kt통합 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해안으로부터 220㎞ 떨어진 공해상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이스라엘 군인 5명이 배에 보트를 댄 뒤 올라탔다. 군인들은 활동가 4명을 케이블 타이로 결박한 뒤에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와 페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파괴했다.



8일 새벽 하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220㎞ 떨어진 공해상에서 천개의 마들린호 선단의 선버드호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돼 카메라가 파괴되기 직전 상황을 촬영한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자유함대연합 제공


군인들은 활동가들을 인근 군함으로 옮긴 뒤 무릎을 꿇게 하고, 30분 뒤 방으로 옮겼다. 6시간 가량 군함으로 이스라엘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방공제 남부 아슈도드 항구로 이동하는 중 이스라엘 군인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공격하고 있는지 아는가’ ‘10월7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나’라며 활동가들을 세뇌하려 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이스라엘 정부 쪽은 ‘72시간 내로 추방된다는 것을 공지받았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을 하도록 요구했다. 서류에 서명한 해초는 “반성을 요구하는 내 20세이하 용은 없었고, 활동가들이 말을 잘 듣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프랑스인 활동가들에게는 통역사와 변호사를 제공했지만, 해초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했다. 해초는 “변호사를 요구하니, 군인이 ‘나는 핸드폰이 없다. 네 핸드폰으로 전화해라’며 조롱했다”고 말했다.
해초와 활동가들은 버스에 태워져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4시간 동안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 있는 케치오트 교도소로 옮겨졌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사막 밤의 추위에도 일부러 강하게 냉방기를 틀어 활동가들이 추위에 떨게 만들었다. 협조적이지 않은 활동가는 창문이 없는 공간에 가뒀다. 손목을 파고드는 케이블 타이의 고통을 호소한 프랑스 활동가의 절규는 무시당했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의 케이블 타이를 더 강하게 조였다.
교도소에 도착하자 남성 의사 앞에서 남녀 모두 옷을 벗게 한 뒤 신체 검사를 했다. 해초 활동가는 생리가 시작하는 날이라 생리대와 진통제 타이레놀을 요청했지만, 의사로부터 ‘타이레놀이 뭔지 모른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해초 활동가는 “자신이 의사나 변호사, 판사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진짜가 아님을 직감했다”라고 말했다. 하루동안 생리대를 지급받지 못한 여성 활동가들은 그대로 피를 흘려야 했다.



해초 활동가가 탑승한 ‘알라 나자르’(Alaa Al Najjar)호. 지난 5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자녀 9명을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 알라 나자르의 이름에서 따왔다. 사진 tulyppe


활동가들은 남녀로 나뉘어져 수감됐다. 해초 활동가가 옮겨진 구역은 13개 방이 있었고, 대여섯명씩 나눠 수감됐다. 다른 감방에선 구타당하는 활동가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케이블 타이로 고통을 호소하던 프랑스 활동가는 독방에 갇혔다. 다른 활동가들이 그를 풀어달라고 철문을 두드리며 항의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쪽문을 통해 스프레이를 보여주며 ‘조용히 하지 않으면 가스를 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해초와 활동가들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마실 물을 받지 못해, 활동가들은 세면대에 있는 물을 마셔야 했다. 자국 외교관과 면담한 뒤에 받은 물도 감방으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휴지 같은 위생용품도 수감자들의 요구 끝에 하루가 지난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당뇨병 등 지병으로 먹는 약을 제공받지 못했다. 군인이 한밤 중에 모두 깨어나게 한 뒤에 그냥 가버리기도 했다. 감방에선 가축의 대소변에서 나는 것 같은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해초는 “열악한 환경 중에도 앞서 수감된 가자구호선단 활동가들이 벽에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남긴 글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해초는 수감 이튿날에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나 20분간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다음날 튀르키예나 요르단 등으로 풀려날 것임을 전달받았다.
그는 수감 3일째인 10일 새벽 버스에 태워져 공항으로 향했다. 이때는 사막의 더위에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천식 환자와 노인들을 위해 에어컨을 틀어주길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아무 내용도 적히지 않은 비행기 탑승권을 받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야 마음을 놓은 활동가들은 함께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튀르키예 항공사 승무원들은 활동가들을 환대하며 근사한 기내식을 내왔다. 도착한 뒤엔 튀르키예 고위 인사의 환영을 받았다. 튀르키예 항공에선 어떤 나라든 갈 수 있는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을 제공했다.
그날 밤 호텔에서 묵은 해초는 다음날인 11일 한국이 아닌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그는 현재까지 파리에 있는 ‘천개의 마들린호’ 사무실 겸 숙소에서 머물며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이때까지도 이스라엘에 억류됐던 천개의 마들린 활동가 모두가 추방돼, 해초는 이들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14일 파리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해 발언할 예정이기도 하다.



‘가자로 향하는 천개의 마들린호’ 선단에 참여해 항해 중인 해초 활동가. 제공 강정친구들, 개척자들


이재명 대통령은 해초의 나포 소식에 지난 9일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 신속 석방, 조기 귀국을 위해 국가 외교 역량을 최대한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해초는 “실제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며 “대통령 입에서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에선 소셜미디어와 기사 댓글에서 ‘왜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국력 낭비시키냐’란 비난도 나왔다. 이에 해초 활동가는 “이런 말들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지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같은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겪은 한국인들은 더욱 팔레스타인과 연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정권은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나치와 같은 세력”이라며 “이들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에 찬성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수감 중인 지난 9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휴전에 합의했다. 해초는 “휴전이 가자지구의 절박한 인도적 상황이 개선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완전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절차는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휴전을 파기했던 과거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휴전 이후에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여전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해초는 가자구호선단 운동이 시작된 뒤 20년만에 처음으로 참여한 한국인이다. 그는 앞으로 그 뒤를 이어 더 많은 한국인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활동도 펼칠 예정이다. 해초는 “한국에서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투쟁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나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천개의 마들린호는 오는 11월 두번째 선단을 가자지구로 보낸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