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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아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는 것,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25년 8월 28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 파티마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 글에서는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대학생이자 여성 활동가였던 그녀는 탈레반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가로서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우리의 활동을 원하지 않았고,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학교와 대학 문을 닫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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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1996년부터 집권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2021년 8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권력을 잡은 탈레반은 여성이 다니던 학교를 폐쇄했고, 여성은 더 이상 출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시위주식폐인
중에 탈레반은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나쁜 여자라고 했어요. 나쁜 여자니까 길거리에 있는 거라고요. 거리에서 시위한다고 탈레반이 몽둥이를 들고 여성들을 때리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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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자유’라는 글자를 들고 시위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 파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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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지난 정부에서 일했던 군인이나 경찰을 찾기 위해 가택 수색을 벌였다. 또한 총을 든 탈레반이 거리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거리에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파티마가 2021년 9월 7일 카불에서 있었던 시위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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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조직할 때마다 소셜 미디어에 초대장이나 정보를 게시하고 장소를 알려주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약속된 장소에 모였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참여했어요. 사람이 모여들자 탈레반이 왔습니다. 그들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에게 이곳에서 떠나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탈레반의 요구를 거부했고, 탈레반은 총을 쏘기도 했어요."
파티마뿐만 아니라 다른 아프가니스탄 여성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여성이 거리 시위에 나서면 탈레반은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몽둥이나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고, 여성들의 발 주변에 총을 쏘기도 했다는 것.
"탈레반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 일부 여성은 어느 병원 지하로 도망갔어요. 이후 탈레반은 한 시간 동안 그곳에 여성들을 가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가족들이 와서 탈레반에게 간청하고 나서야 여성들을 풀어줬어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자 여성 활동가인 파티마에게 탈레반은 어떤 의미일까.
"탈레반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우리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 간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지의 어둠일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탈레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거짓된 종교와 이슬람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여성이 학교에 가거나 교육받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파티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어머니 나디아(가명)에게 딸이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물었다.
"하루는 파티마가 시위에서 돌아오자 탈레반이 쫓아왔고, 파티마는 다른 곳에 숨었어요. 탈레반은 우리가 딸을 내놓지 않으면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위협했어요. 아들은 14~15살 정도였고요."
딸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딸을 시위에 가게 했습니다. 아들은 아주 어렸고, 남편은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없었습니다. 딸은 교육받았지만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여성을 위한 길을 찾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파키스탄으로
2022년 나디아와 파티마, 그리고 남동생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인접국인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파티마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신변까지 위험한 데다, 여성은 일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저는 의료 비자를 받아 파키스탄에 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은 비자를 신청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아 비공식적인 경로로 파키스탄에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우 무섭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집을 떠나 국경으로 갈 때 탈레반이 저를 체포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르카를 입고 탈레반이 저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부르카는 여성이 머리와 얼굴 등 전신을 가리도록 만든 옷의 형태다.
▲ 파티마가 찍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거리 풍경.
ⓒ 파티마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뒤 파티마와 그녀의 가족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
"카불에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집을 세를 주었습니다. 그 돈이 파키스탄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나중에 세입자가 떠났고, 한동안 집은 닫혀 있었습니다. 탈레반은 이웃 사람에게 이 집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몇 달 후에 탈레반이 그 집의 소유권을 가져갔고, 이제 우리는 그 집도 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친척 집이에요. 카불에 있는 이모가 돈을 조금 빌려줬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에게 2025년 8월 3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파티마가 가지고 있던 비자는 이미 기한이 끝난 상황이다. 난민 가운데는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돼 강제로 추방된 사례도 많다.
"이 건물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왓츠앱' 그룹을 가지고 있어요. 이웃 사람이 경찰을 보면 왓츠앱 그룹에 경고를 보내고, 그때마다 집에서 도망칩니다. 거리로 나가서 어딘가에 숨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경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합니다."
난민들이 경찰의 체포를 피하고자 문을 밖에서 잠그는 경우도 있는데, 집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파키스탄에서 파티마는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시위에도 참여하고,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조직한 행사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상황이 좋지 않아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체포돼 아프가니스탄으로 송환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돼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추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살해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탈레반에게 잡혀간 여성 중 일부가 며칠 후 시신으로 변해 쓰레기 더미나 다른 곳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위하여
파티마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저는 의대생이었고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그게 저에게는 크게 안타까운 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자유로워지면, 돌아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는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을 원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소원입니다."
마지막으로 파티마에게 세상 사람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없는지 물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매우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바깥 세계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도와야 합니다. 어떤 종류든 작은 기여라도, 심지어 젊은 여성의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기여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 9월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느닷없이 인터넷 서비스가 차단됐다가, 10월 초에 재개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탈레반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외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외출이 어려운 여성에게 인터넷은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였다. 파티마와 같은 여성에게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기 위해 세계 시민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는 것,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25년 8월 28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 파티마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 글에서는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대학생이자 여성 활동가였던 그녀는 탈레반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가로서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우리의 활동을 원하지 않았고,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학교와 대학 문을 닫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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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1996년부터 집권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2021년 8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권력을 잡은 탈레반은 여성이 다니던 학교를 폐쇄했고, 여성은 더 이상 출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시위주식폐인
중에 탈레반은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나쁜 여자라고 했어요. 나쁜 여자니까 길거리에 있는 거라고요. 거리에서 시위한다고 탈레반이 몽둥이를 들고 여성들을 때리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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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자유’라는 글자를 들고 시위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 파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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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지난 정부에서 일했던 군인이나 경찰을 찾기 위해 가택 수색을 벌였다. 또한 총을 든 탈레반이 거리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거리에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파티마가 2021년 9월 7일 카불에서 있었던 시위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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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조직할 때마다 소셜 미디어에 초대장이나 정보를 게시하고 장소를 알려주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약속된 장소에 모였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참여했어요. 사람이 모여들자 탈레반이 왔습니다. 그들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에게 이곳에서 떠나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탈레반의 요구를 거부했고, 탈레반은 총을 쏘기도 했어요."
파티마뿐만 아니라 다른 아프가니스탄 여성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여성이 거리 시위에 나서면 탈레반은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몽둥이나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고, 여성들의 발 주변에 총을 쏘기도 했다는 것.
"탈레반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 일부 여성은 어느 병원 지하로 도망갔어요. 이후 탈레반은 한 시간 동안 그곳에 여성들을 가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가족들이 와서 탈레반에게 간청하고 나서야 여성들을 풀어줬어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자 여성 활동가인 파티마에게 탈레반은 어떤 의미일까.
"탈레반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우리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 간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지의 어둠일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탈레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거짓된 종교와 이슬람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여성이 학교에 가거나 교육받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파티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어머니 나디아(가명)에게 딸이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물었다.
"하루는 파티마가 시위에서 돌아오자 탈레반이 쫓아왔고, 파티마는 다른 곳에 숨었어요. 탈레반은 우리가 딸을 내놓지 않으면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위협했어요. 아들은 14~15살 정도였고요."
딸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딸을 시위에 가게 했습니다. 아들은 아주 어렸고, 남편은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없었습니다. 딸은 교육받았지만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여성을 위한 길을 찾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파키스탄으로
2022년 나디아와 파티마, 그리고 남동생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인접국인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파티마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신변까지 위험한 데다, 여성은 일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저는 의료 비자를 받아 파키스탄에 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은 비자를 신청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아 비공식적인 경로로 파키스탄에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우 무섭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집을 떠나 국경으로 갈 때 탈레반이 저를 체포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르카를 입고 탈레반이 저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부르카는 여성이 머리와 얼굴 등 전신을 가리도록 만든 옷의 형태다.
▲ 파티마가 찍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거리 풍경.
ⓒ 파티마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뒤 파티마와 그녀의 가족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
"카불에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집을 세를 주었습니다. 그 돈이 파키스탄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나중에 세입자가 떠났고, 한동안 집은 닫혀 있었습니다. 탈레반은 이웃 사람에게 이 집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몇 달 후에 탈레반이 그 집의 소유권을 가져갔고, 이제 우리는 그 집도 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친척 집이에요. 카불에 있는 이모가 돈을 조금 빌려줬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에게 2025년 8월 3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파티마가 가지고 있던 비자는 이미 기한이 끝난 상황이다. 난민 가운데는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돼 강제로 추방된 사례도 많다.
"이 건물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왓츠앱' 그룹을 가지고 있어요. 이웃 사람이 경찰을 보면 왓츠앱 그룹에 경고를 보내고, 그때마다 집에서 도망칩니다. 거리로 나가서 어딘가에 숨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경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합니다."
난민들이 경찰의 체포를 피하고자 문을 밖에서 잠그는 경우도 있는데, 집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파키스탄에서 파티마는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시위에도 참여하고,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조직한 행사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상황이 좋지 않아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체포돼 아프가니스탄으로 송환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돼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추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살해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탈레반에게 잡혀간 여성 중 일부가 며칠 후 시신으로 변해 쓰레기 더미나 다른 곳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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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대생이었고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그게 저에게는 크게 안타까운 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자유로워지면, 돌아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는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을 원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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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갈 수 없게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외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외출이 어려운 여성에게 인터넷은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였다. 파티마와 같은 여성에게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기 위해 세계 시민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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